떼땅져에서의 즐거운 투어를 마치고, 근방의 레스토랑에서 샴페인 한잔과 점심을 먹고 오후 두시반으로 예약된 뵈브 클리코의 셀러 투어를 위해 이동 했다. 뵈브 클리코의 경우 앞서 투어에 참여했던 떼땅져보다 랭스 시내에서 남쪽으로 5~10분거리 더 떨어져 있다.
뵈브 클리코는 돔페리뇽, 모엣샹동과 함께 흔히들 말하는 세계 3대 샴페인으로 불리는 샴페인 브랜드이다. 애초에 전국/세계 N대 라는 식의 표현을 크게 선호하지는 않지만(그런 표현의 기준이 무엇인지 당최 알수 없다), 샴페인의 경우 약 120여개의 샴페인 메이커 중 상위 20여개의 샴페인 메이커가 전체 생산량의 70%이상을 담당하고 있고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뵈브 클리코는 생산/판매량 기준으로 최상위에 속하는 브랜드이다.
뵈브클리코는 지금은 명품 재벌(?) LVMH에 인수되어 모엣샹동, 돔페리뇽과 함께 LVMH 산하에서 운영되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투어 시작 전부터 LVMH의 브랜딩 파워(?)와 자금력을 체감 할 수 있었다. 투어 장소 전체가 뵈브 클리코 특유의 Yellow Label 색상을 테마로 하여 포인트있게 잘 꾸며져 있었달까.
내가 예약한 영어 투어 예정시각인 오후 2시반이 다 되도록 대기장소에서 아무도 만날 수가 없어, 혹시 장소를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닌지 불안해 하며 데스크에 다시 문의를 했는데 알고보니 나와 동시간대 투어를 예약한 단체 손님(아마도 영국에서 가족 여행 오신 분들인듯)이 지각을 하는 바람에 나와 가이드 단둘이 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어색함은 나의 몫)
앞서 방문한 떼땅져와 비슷하게 뵈브 클리코 역시 백암(Chalk) 암반 밑으로 펼쳐진 넓디 넓은 샴페인 숙성고를 가지고 보유하고 있었고, 각 샴페인 숙성고는 과거 백암 체굴을 위해 굴뚝 모양으로 다듬어진 모양새였다. 오늘의 투어 가이드에게 떼땅져 투어를 이미 다녀왔다고 말했더니, 떼땅져와 유사한 숙성고 이지만 그 규모는 자기네가 훨씬 크다고. 숙성고의 총 길이가 25km 정도로 랭스지방에선 가장 넓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모든 뵈브 클리코가 이 숙성고에서 숙성과정을 거친다고, 너가 마셔본 모든 뵈브 클리코 bottle이 여기서 왔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그 규모를 짐작 해볼 수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뵈브 클리코의 원래 이름은 ‘뵈브’ 클리코가 아니였다고 한다. 원래는 샹파뉴 지역에서 직물 유통업을 하던 필립 클리코가 사업을 시작했는데, 필립 클리코는 직물 관련 사업을 주력으로 했고 와인 생산업은 부업 정도로 생각했다고 한다. 한편 같은 지역의 니콜라 퐁샤르당이라는 사업가 역시 직물 사업을 했는데, 이 둘이 친분이 두터웠는지 가 자녀들을 결혼시키면서 사업적 제휴관계도 발전 시켜왔다. 그래서 니콜라 퐁샤르당의 딸 바르브-니콜 퐁샤르당과 필립 클리코 가문의 프랑수아 클리코가 결혼했는데, 당시 바르브-니콜 퐁샤르당은 겨우 21살이었다고 한다.
결혼 후 아들 프랑수아는 사업을 잘 번창시켜 나갔고 그래서 아버지 필립은 아들에게 경영을 물려주고 은퇴했다. 특히 처음에는 주력이 아닌 부업 정도였던 와인 생산 쪽이 프랑수아가 경영을 맡으면서 사업이 잘 되어서 오히려 주력 사업 으로 올라설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 6년 만에 남편이 갑자기 앓기 시작하더니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며칠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 바람에 퐁샤르당 여사는 27살의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그래서 브랜드에 ‘미망인, 과부’라는 뜻의 뵈브(Veuve)가 붙은 것.
퐁샤르당 여사는 남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남편이 일구어온 와인 사업을 본인이 직접 맡아 진행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는 여성이 사업의 전면으로 나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시대였는데(투표권 조차도 없었던 시대) 퐁샤르당 여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사업을 진행하여 오히려 남편이 하던 시절 보다도 더욱더 사업을 번창 시켰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오느날 샴페인 병 안에 들어 있는 효모 찌꺼기를 제거하는 방법인 데고르쥬망을 개발한 것도 퐁샤르당 여사였다고 한다. 그 전까지 샴페인은 병 안에서 2차 발효 과정에서 발생한 효모 찌꺼기를 병에서 쉽게 빼낼 방법이 없어서 잘 가라앉힌 다음 음용 했는데(흡사 막걸리??) 이 방법은 시각적으로도 좋지 못할 뿐더러(샴페인의 묘미 중 하나는 금빛의 맑은 액체에서 터져나오는 버블 아니겠는가?) 맛과 품질 유지의 측면에서도 좋지 못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오느날의 샴페인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뵈브 클리코의 창립자인 것이다.
투어는 생각보다 다채롭게 구성이 되어 있었는데, 투어 중 가장 인상 적이었던 파트는 샴페인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각 포도 품종들을 시각, 후각적으로 체험 할 수 있도록 구성했던 장면. 동굴 벽면에 펼쳐지는 영상과 함께 각 포도 품종별 향기와 그 포도 원액들을 블랜딩해 만들어지는 샴페인의 향을 직접 공간에 분사해서 느낄 수 있게 해준다.(역시 LVMH의 클라스란 이런 것인가..) 물론 그 향기가 실제 포도나 샴페인의 향기와 어느정도 거리감은 있었지만(다소 인공적이라는 느낌이 듦) 나 같은 샴페인 초보자들도 차이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느끼고 이해 할 수 있었다.
원래 일반적인 투어에서는 가이드만 들고다니고 투어 참가자에게 테블릿을 제공하지 않는 것 같지만, 운 좋게도(?) Private Tour로 시작 했기 때문에(결국 중간에 지각한 영국 가족도 합류했다) 테블릿을 제공 받아 컨텐츠를 살펴보는 기회가 쏠쏠했다. 테블릿 내에 동굴의 지도가 그려져있고 투어를 진행하며 동굴을 이동 할 때마다 동굴 벽면에 적혀진 고유 번호를 입력하면 해당 동굴에서 진행될 투어와 관련된 각종 자료가 제공되는 방식.
투어의 묘미는 역시 시음 시간. 일반적인 뵈브 클리코의 Yellow Label (이것도 숙성 기간이 좀 더 긴 한정판이긴 했다)과 2012 Vintage의 Rose 를 비교 시음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블라인드 형식으로 제공하고 어떤 샴페인이 좀 더 복합적인 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왜 그런지에 대해 각자 논의 하는 시간.
출구로 나가는 계단에는 연도가 표기되어 있었는데, 이는 포도의 작황이 좋아 해당 년도의 포도만을 가지고 Vintage 샴페인을 만드는 경우 계단에 하나씩 표기를 한다고 한다. 샴페인의 경우 여러해에 걸친 포도를 이용하여 만든 와인을 혼합하여 제조하는 Non Vintage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지금도 그게 더 일반적이다), Vintage 방식의 샴페인을 선도적으로 시장에 내놓은 것도 뵈브 클리코 여사 였다고 한다. 이 정도면 샴페인 역사에 있어서 여러모로 큰 발자취를 남겼다고 볼 수 밖에.
살거면 사고 말려면 말아 였던 떼땅져와 다르게 뵈브클리코는 투어를 마친 이후 유료로 추가 시음도 가능했고, 특유의 노란색 포인트가 들어간 굿즈들을 열심히 팔고 있었다.
명품은 안사도 술은 못참지. 뵈브클리코 포인트가 들어간 샴페인 잔이 생각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고, 2012년 빈티지 샴페인의 가격도 국내 대비 합리적인 편이라(58유로) 캐리어가 무거워짐을 감수하고 샴페인 한병과 잔 2개를 구매했다.
이로서 랭스 여행의 목적이었던 샴페인 투어 2곳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다. 파리에서 랭스로 이동하는 것이 3일이라는 짧은 자유 시간 동안 나름의 큰 투자였지만 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술이 만들어지는 곳을 방문하는 것은 늘 즐겁고 짜릿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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